위부인의 이상국 연말특집 데이터베이스 Wiki
Advertisement

뚱땡이가 많은 국가=민주적인 국가?

근사한 모자와 개성적인 안경을 쓸 자유를 뜻합니다.

비만률과 민주성과의 관계는 예전부터 주목되어 왔으며 현재에도 연구되고 있습니다.
“비만률 상승을 피하기 위해 민주화를 부정하겠다” 라는 이라크 정부의 입장은 몇 년 전 화제 되기도 하였죠.
사실 자본주의, 자유경제, 소비자 선택, 빈부격차, 정치적 정확성 등등과 얽힌 뚱땡이와 민주주의의 관계는 사회학에 있어서 국민병신론 만큼이나 난제입니다.
하지만 자유가 존중되는 상황에서는 일반적으로 게으르고 살찔 (소위 말하는 럭셔리한) 선택이 우선시 되기는 하며, 뚱땡이들이 거리에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일단 외견에 관한 압력을 강하게 느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즉 발언의 자유, 표현의 자유, 선택의 다양성, 관용적인 사회, 긍정적인 국민 이미지 등이 괜찮게 들린다면 뚱땡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비계는 곧 문화이다?

미켈란젤로가 교황 레오10세를 생각하며 다비드를 조각했을 경우

“저기 펭귄이 사람보다 체지방률 높은데^^;;; 황제펭귄은 지방 태워서 체중 45%를 감량하기도 하고, 이거 다 지방 맞죠? 하지만 사람은 해 봤자 18~30% 정도잖아요. 그러면 사람보다 펭귄문화가 더 발달했다는;;; XD”
같은 반론이 예상되는 화두입니다만, 보통 펭귄보다는 뚱땡이 인간이 생존을 위해 불필요한 지방을 많이 보존하고 있겠고 펭귄은 인간에 비해 조직구조가 단순하며 비만률이 낮습니다.
심지어 공룡조차 세포가 살찌면서 거대해지지 않았습니까? 문화는 과학기술을 내포한 잉여 발상력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석 가모니는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기까지 여분의 지방을 불태워 명상에 임하였고, 다빈치는 꿀과 계란을 열심히 퍼먹으며 신성한 영감과 냉철한 지성으로 빚어진 위대한 창조물들을 미완성하였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추운 방에 헐벗고 앉아 보드카로 축적한 옆구리 살을 불태우며 문학계를 흔들 명작들을 집필하였습니다.
혹시 뚱땡이 펭귄들만 모아 놓고 통제된 환경에서 800세대를 거쳐 품종을 개량하다 보면 펭귄 버전 ‘가난한 사람들’쯤은 나올지도 모릅니다.


뚱땡이로부터 사람 스스로를 깨닫는다?

자연에 대한 통섭적인 결론은 전부 잘못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황금비율도 개정

위에 뚱땡이들을 잉여의 산물이라는 듯이 적고 보니 오해의 여지가 남을 것 같아 여기 덧붙입니다.

예전 강의실에서 “홈레스들이 정말 가난하다면 왜 살찌냐?” 라고 질문했다는 의기양양한 애송이 친구들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 대답에 대한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북미는 라면의 고열량 버전으로 크래프트 디너라는 창조물을 빚어냈습니다. 세일기간에는 1~2달러 정도에 10개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대략 60센트로 하루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셈이고 대량으로 구입하면 그보다 싸질 수도 있죠. 칼로리는 56g당 240. 즉 1회분을 먹는다면 대략 1000칼로리. 하루 3끼 먹는다 치면 성인 남성의 평균 권장 열량인 2500을 거뜬히 넘습니다. 친절하게도 칼로리가 걱정 된다면 저지방 우유를 섞고 버터가 아닌 마가린으로 맛을 내라고 하지만 어찌 되었든 1000칼로리에서 열량이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염분이 높은 음식들이 그렇듯 금새 배가 꺼지며 짠 것과 단 것이 땡기가 됩니다. 허전한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싸구려 과자와 캔디 바 같은 것을 먹다 보면은 금새 뚱땡이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유사상품과 저가격 깡통식품도 더 나빴으면 나빴지 나을 것은 없습니다. 건강한 식사를 위해서는 그 수배, 혹은 수십 배에 달하는 돈이 들어갑니다. 비만과 가난의 관계 외에도 뚱땡이는 우리에게 수많은 지식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는 뚱땡이들과 지구온난화가 별로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비만율이 높은 국가는 소비율도 높고 국민당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높기 때문에 조금은 관계 있습니다) 쌍둥이 실험으로 뚱땡이들이 타고 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고, 열량섭취와 열량소비의 대비를 막고 지방합성을 교란하는 뚱땡이 유전자를 발겼습니다. 최근에는 아동성폭력,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이 지방으로 심층적이고 물리적인 방어벽을 형성할 수도 있다는 연구성과가 발표되기도 하였습니다. 뚱땡이들의 존재감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서로를 보며 무엇을 이해하기 시작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을 수도 있고, 이해할 것이 별로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뚱땡이는 사람이며 사람은 곧 뚱땡이임을 인지하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살이 없는 에로스가 있겠는가?

"인정하고 싶지 않으시겠지만.... 쌍삿대질 하시는 분들 계시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있습니다. 당장은 해골과 미이라의 정사나 몬스터 트럭을 보며 딸을 치실 분들이 떠오르고 조금만 조사해도 더욱 다양한 취향이 나오겠죠. 하지만 풍선이 터지는 것에 흥분하는 분들도, 드래곤이 트럭 안에 사정할 때마다 광희하는 분들도, 그 페티쉬가 근본적으로 육욕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근대에 들어선 남성들이 한 성별 그룹에 속한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유의하면서 취하게 된 방어적인 자세는 한 손으로 번쩍 들어올려 검지와 중지로 뱅뱅 돌릴 수 있는 삐쩍 마른 여성들에 대한 선호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아가고양이 같은 요즘 남자들과는 달리 우리 옛 선조들은 “여자는 애 낳는 기계요, 영적 사랑을 나눌 정도로 고귀한 성별이 아니다” 라는 믿음을 의심치 않고, 여자 입에서 나온 말이면 지구는 태양 주위를 타원형으로 돈다고 한들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는 남자 중의 남자들이었기 때문에 물씬 살이 오른 글래머러스한 육체를 아름다이 여겼습니다. 시대가 지날수록 성과 관련된 매체와 표현이 늘어나는 한편, 남성들은 점점 아가고양이가 되어갔기 때문에 한 작은 부위와 상황에 집착하는 페티쉬들 중 일부는 지금 와서는 아주 일반적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페티쉬중에서도 전체적인 볼륨과 손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부위에 탐욕하는 뚱땡이 패티쉬야 말로 완벽한 궁극의 성벽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때로는 사람을 그냥 지방 덩어리 취급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적어 놓고 보면 당연하게 들리지만 살에 대한 욕망은 아주 일반적입니다. 증거라고 하기는 뭐 하더라도 야동 사이트에 “BBW”라고 검색하시면 “Creampie Compilation” 보다 많은 결과물이 나올 것입니다.


SUMO

심판도 관객도 선수들도 지루하다는 표정입니다

스모란 알다시피 요상하게 머리를 올리고(정확히는 Chonmage) 팬티(정확히는 Mawashi)만 두른 뚱땡이 둘이 모래판 위에서 서로를 막 밀어대는 스포츠입니다.

비슷한 전통예인 대한민국의 씨름은 공적인 자리에서 사라졌건만, 어째서 스모는 아직까지 견제할까요? 스모 선수가 씨름 선수보다 뚱땡이이기 때문도 있지만 예부터 덴노가의 지원을 받으며 국민적인 행사로서 대대로 홍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군대가 없는 일본에서는 지진과 함께 술 취한 아저씨들의 이야기 거리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한편 왕가가 선호하는 스포츠 중에는 폴로도 있습니다. 영국왕실이 선호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인지 무정부시위가 활개치는 지금도 영국정부는 세금을 분배해서 폴로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1939년까지는 올림픽 스포츠이기까지 했습니다. 올림픽 참가는 스모가 꿈도 꾸지 못할 경력이기는 어디 두 스포츠를 비교해 봅시다. 평범한 사람이 말에 타고 있는 광경은 세계 어디서나 쉽게 찾아 볼 수 있지만 노출도 높은 뚱땡이가 다리 벌리고 있는 광경은 게이 포르노 혹은 일본의 스모뿐입니다. 스모는 바로 일본문화 대외홍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짭짤한 수입과 짧은 명, 그리고 낮을 것 같은 수정률로 더할 나위 없는 신랑감이었던 스모선수지만 요즘에는 건강에 대한 경각심과 함께 진보한 수술기술과 다이어트 프로그램으로 인해 예전만한 인기는 없습니다. 한가지 변함 없는 사실은 그들이 탄탄한 지방과 높은 노출도로 우리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뚱땡이는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예수가 세상의 모든 짐을 짊어지고 있다고 하듯...

순번은 마지막이지만 어쩌면 이것이 가장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문명의 태동부터 지금까지 뚱땡이는 궁극의 희극적 장치이어 왔습니다. 뚱땡이를 부정하고 그들을 혐오하는 사람조차 내심 뚱땡이를 보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뚱땡이는 굶는 어린이나 암 투병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만의 원인은 본인에게 있다고 흔히 생각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뚱땡이에 대해서 우월한 입장의 동정심을 가질 수는 있지만 죄책감을 느낄 필요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 자신감을 되찾기에는 뚱땡이가 적격이니 뚱땡이는 곧 삼라만상을 이루는 원소와도 같습니다.

Advertisement